사랑의 기술
이 책은 독자들에게, 가장 능동적으로 자신의 퍼스낼리티 전체를 발달시켜 생산적 방향으로 나아가지 않는 한, 아무리 사랑하려고 노력해도 반드시 실패하기 마련이며, 이웃을 사랑하는 능력이 없는 한, 또한 참된 겸손, 용기, 신념, 훈련이 없는 한, 개인적인 사랑도 성공할 수 없다는 것을 깨우쳐주려고 한다. 5p
사랑은 기술인가? 기술이라면 사랑에는 지식과 노력이 요구된다. 혹은 사랑은 우연한 기회에 경험하게 되는, 다시 말하면 행운만 있으면 누구나 '겪게 되는' 즐거운 감정인가? 이 작은 책은 사랑은 기술이다. 라는 견해를 전제로 하고 있지만, 대부분의 현대인들은 물론 사랑은 즐거운 감정이라고 믿고 있다. 13
우선 대부분의 사람들은 사랑의 문제를 '사랑하는', 곧 사랑할 줄 아는 능력의 문제가 아니라 오히려 '사랑받는' 문제로 생각한다. 13
사랑스러워지는 여러 가지 방법은 성공하기 위해, 곧 '벗을 얻고 사람들에게 영향력을 갖기 위해' 우리가 사용하는 방법과 같다. 사실상, 우리 문화권 대부분의 사람들이 사랑스럽다고 말하는 경우, 그 의미는 본질적으로는 인기와 성적(性的) 매력이 뒤섞여 있다는 것이다. 14
상점의 진열장을 들여다보며 느끼는 스릴과 살 수 있는 것이면 무엇이든지 현금 또는 할부로 사는 맛, 이것이 현대인의 행복이다. 그느(또는 그녀는) 사람들도 같은 방식으로 본다. 남자에게 매력 있는 여자 그리고 여자에게는 매력 있는 남자는 탐나는 경품이다. '매력'은 보통 인기 있고 퍼스낼리티(Personality) 시장에서 잘 팔리고 있는 품질 좋고 멋진 포장을 의미한다. 15
어쨋든 사랑하게 되었다는 느낌은 보통 자신의 교환 가능성 범위에 있는 인간 상품에 대해서만 나타난다. 16
시장 지형적이고 물질적 성공이 현저한 가치를 지니는 문화권에서 인간의 애정 관계가 상품 및 노동시장을 지배하려는 교환 형식과 동일하다고 해서 놀랄 이유는 전혀 없다. 16
사실상 그들은 강렬한 열중, 곧 서로 '미쳐버리는' 것을 열정적인 사랑의 증거로 생각하지만, 이것은 기껏해야 그들이 서로 만나기 전에 얼마나 외로웠는가를 입증할 뿐이다. 17
확실한 것은 과거뿐이고 미래에 확실한 것은 오직 죽음뿐이다. 24
우리는 외부 세계로부터 철저하게 물러남으로써 분리감이 사라질 때에 완전한 고립의 공포를 극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때는 인간이 분리되어 있던 외부 세계도 사라져버린다. 26
인류가 이러한 원초적 결합에서 벗어나면 벗어날수록, 인류는 자연의 세계에서 더욱더 분리되고, 분리 상태에서 벗어나는 새로운 방법을 찾아내려는 욕구도 더욱더 강렬해진다.
온갖 종류의 '진탕 마시고 떠드는 상태'는 이러한 목적을 달성하는 한 가지 방법이다. 27
분리되지 않으려는 욕구가 얼마나 절실한가를 이해한다면, 남과 다르다는 데서 느끼는 공포, 군중과 약간 떨어 있다는 데서 느끼는 공포가 얼마나 강력한가를 이해할 수 있다. 때로는 이러한 불일치에 대한 공포는 일치하려고 하지 않은 자를 위협하는 실제적 위험에 대한 공포로서 합리화 되기도 한다. 그러나 실제로는, 적어도 서양 민주주의에서는, 사람들은 일치하도록 '강요받는' 정도 이상으로 일치하기를 '바라고 있다'. 30
사실상 아무런 차이도 없는 경우에 '이것은 다르다'는 슬로건을 떠들어대는 것은 차이를 추구하는 애처로운 욕구를 드러내는 것이다. 31
오늘날 평등은 일체성보다는 오히려 동일성을 의미한다.32
현대 사회는 이러한 비 개성화된 평등이라는 이성을 설교하고 있다.
현대사회는 인간에게 대집단 속에서 마찰 없이 원활하게 일하도록 서로 동일한 원자적 인간이 되기를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즉 모두 동일한 명령에 복종하면서도 각기 자신의 욕망에 따르고 있다는 확신을 갖게 하는 것이다. 현대의 대량 샌산이 상품의 규격화를 요구하는 것처럼 사회적 과정은 인간의 표준화를 요구하고 이러한 표준화를 '평등'이라고 한다. 33
그들은 모두 조직의 전체적 구조에 의해 지시된 일을 지시된 속도로 지시된 방식에 따라 수행하고 있다. 심지어 감정조차도 지시받고 있다. 쾌활함, 믿음직함, 모든 사람과 마찰 없이 지내는 능력까지도. 34
사랑은 인간으로 하여금 고립감과 분리감을 극복하게 하면서도 각자에게 각자의 특성을 허용하고 자신의 통합성을 유지시킨다. 사랑에서는 두 존재가 하나로 되면서도 둘로 남아 있다는 역설이 성립된다. 38
사랑은 수동적 감정이 아니라 활동이다. 사랑은 '참여하는 것'이지 '빠지는 것'이 아니다. 가장 일반적인 방식으로 사랑의 능동적 성격을 만한다면, 사랑은 본래 '주는 것'이지 받는 것이 아니라고 설명할 수 있다. 40
준다는 것은 무슨 뜻인가? 이 물음에 대한 대답은 단순한 듯하지만 사실은 매우 애매하고 복잡하다. 가장 광범위하게 퍼져 있는 오해는 준다는 것은 무언가를 '포기하는 것',빼앗기는 것, 희생하는 것이라는 오해다. 성격상 받아들이고 착취하고 혹은 저장하는 것을 지향하는 단계를 넘어서지 못한 사람은 '준다'고 하는 행위를 이러한 방식으로 경험한다.
시장형 성격의 사람은 주려고 하지만 단지 받는 것과 교환할 뿐이다. 그에게는 받는 것 없이 주기만 하는 것은 사기당하는 것이다.40
많이 '갖고' 있는 자가 부자가 아니다. 많이 '주는'자가 부자다. 42
가난은 직접 야기시키는 고통이 아니라 가난한 자로부터 주는 기쁨을 빼앗는다는 사실 때문에 수치이다. 42
주는 행위로서의 사랑의 능력이 그 사람의 성격 발달에서 영향을 받는 다는 사실은 새삼 강조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이것은 특히 성격이 생산적 방향으로 발달하는 것을 전제로 하고 있다. 이러한 방향에서 인간은 의존성, 자아도취적 전능, 타인을 착취하려는 욕망, 곧 목표 달성에 있어서 자신의 힘에서 의존하는 용기를 획득해왔다. 이러한 성질이 결여되어 있는 정도에 따라, 인간은 자기 자신을 주는 것, 따라서 사랑하는 것을 두려워 한다. 44
"사랑은 사랑하고 있는 자의 생명과 성장에 대한 우리의 적극적 관심이다." 45
사람은 자신의 노동의 대상을 사랑하고 자신이 사랑하는 것을 위해 일하기 마련이다. 46
만일 사랑의 세 번째 요소인 '존경'이 없다면, 책임은 쉽게 지배와 소유로 타락할 것이다. 존경은 두려움이나 외경은 아니다. 존경의 이 말의 어원(repicere=바라보다)에 따르면,
어떤 사람을 있는 그대로 보고 그의 독특한 개성을 아는 능력이다. 존경은 다른 사람이 그 나름대로 성장하고 발달하기를 바라는 관심이다. 이와 같이 존경은 착취가 없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나는 사랑하는 사람이 나에게 이바지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기 자신을 위해서 자기 나름대로의 방식으로 성장하고 발달하기를 바란다. 만일 내가 다른 사람을 사랑한다 나는
그(또는 그녀)와 일체감을 느끼지만 이는 '있는 그대로의 그'와 일체가 되는 것이지, 내가 이용할 대상으로서 나에게 필요한 그와 일체가 되는 것은 아니다.
'내'가 독립을 성취할 때에만, 다시 말하면 목발 없이, 곧 남을 지배하거나 착취하지 않아도 서서 걸을 수 있을 때에만 존경이 가능하다는 것은 분명하다. 존경은 오직 자유를
바탕으로 해서 성립될 수 있다. 프랑스의 엣 노래처럼 '사랑은 자유의 소산'이며 결코 지배의 소산이 아니다. 47
지식은 사랑의 문제에 대해 더욱 근본적인 또 하나의 관계를 갖고 있다. 분리라는 감옥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다른 사람과 융합하려는 기본적 욕구는 또 하나의 각별히 인간적인 욕망, 곧 '인간의 비밀'을 알려는 욕망과 밀접히 관련되어 있다. 48
인간의 비밀을 알려는 이와 같은 시도의 궁극적 단계는 극단적인 가학적 음란증, 곧 인간을 괴롭히고 고문해서 고통 속에서 자신의 비밀을 누설하도록 강요하는 욕망과 능력이다. 깊고 강렬한 잔인성과 파괴욕의 본질적인 동기는 인간의, 그의 따라서 우리 자신의 비밀에 침투하려는 이러한 갈망에 있다. 49
이 '비밀'을 알게 해주는 또 하나의 길은 사랑이다. 사랑은 다른 사람에게 적극적으로 침투하는 것이고, 이러한 침투를 통해 알려고 하는 나의 욕망은 합일에 의해 만족을 얻는다. 50
보호, 책임, 존경, 지식은 서로 의존하고 있다. 보호, 책임, 존경, 지식은 성숙한 인간, 곧 자신의 힘을 생산적으로 발휘하고 스스로 일한 결과만을 차지하려고 하고, 전지전능이라는 자아도취적 꿈을 포기하고, 오직 순수한 생산적 활동에 의해서만 획득할 수 있는 내적 힘에 바탕을 둔 겸손을 터득한 사람에게서만 찾아볼 수 있는 일련의 태도이다. 52
더 일반적으로 말하면 '나는 현재의 나로서 사랑받는다.' 혹은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나는 나이기 때문에 사랑받는'것이리라. 어머니의 사랑을 받는 이러한 경험은 수동적인 경험이다. 60
어머니의 사랑은 보답할 필요가 없을 뿐 아니라 획득될 수도, 만들어낼 수도, 통제 할 수도 '없다'. 어머니의 사랑이 여기에 있다면 그것은 축복이다. 어머니의 사랑이 여기에 없다면 그것은 마치 인생의 모든 아름다움이 사라져버린 것과 같다. 어머니의 사랑을 만들어내기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하나도 없다. 61
어린아이의 사랑은 '나는 사랑받기 때문에 사랑한다'는 원칙에 따르고, 성숙한 사랑은 '나는 사랑하기 때문에 사랑받는다'는 원칙에 따른다. 성숙하지 못한 사랑은 '그대가 필요하기 때문에 나는 그대를 사랑한다'는 것이지만 성숙한 사랑은 '그대를 사랑하기 때문에 나에게는 그대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62
무조건적인 사랑은 어린아이만이 아니라 모든 인간의 가장 절실한 갈망 가운데 하나다. 한편 어떤 장점 때문에, 다시 말하면 사랑 받을 만해서 사랑받는 경우, 언제나 의심이 남는다. 내가 사랑해주기를 바라는 사람을 즐겁게 해주지 못한 것은 아닐까 하는 두려움도 언제나 남아 있다. 언제나 사랑을 잃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 있는 것이다. 더 나아가 '보상으로 주어지는' 사랑은 자기 자신 때문이 아니라 상대를 즐겁게 해주었다는 이유만으로 사랑을 받는 것이고, 궁극적으로 분석해보면 사랑받는 게 아니라 이용당하고 있다는 쓰라린 감정을 쉽게 일으킨다. 63
어머니는 삶에 신념을 갖고, 지나친 걱정을 해서는 안 되며, 어머니의 걱정이 어린아이에게 전해지게 해서는 안 된다. 어머니는 생애 일부를 어린아이가 독립해서 마침내 그녀에게서 떨어져 나가기를 바라는 소망에 바쳐야 한다. 아버지의 사랑은 원칙과 기대로 인도되어야 한다. 아버지의 사랑은 위협적이고 귄위적이기 보단느 참을성이 있고 관대해야 한다. 아버지의 사랑은 성장하는 어린아이에게 자기 자신을 지배하는 권위를 갖고 아버지의 권위에서 떨어져 나가는 것을 허용해야 한다.
결국 성숙한 사람이 되려면 자신이 자신의 어머니가 되고 아버지가 되는 단계에 도달하지 않으면 안 된다. 말하자면 그는 어머니다운, 그리고 아버지다운 양심을 갖게 되어야 한다. 어머니다운 양심은 '어떠한 악행이나 범죄도 너에 대한 나의 사랑, 너의 삶과 행복에 대한 나의 소망을 빼앗지는 못한다'고 말하고, 아버지다운 양심은 '네가 잘못을 저지르면 너는 네 잘못의 결과를 받아들여야만 하고 내 마음에 들고 싶다면 너는 너의 생활 방식을 크게 바꾸어야 한다'고 말한다. 66
본래 사랑은 특정한 사람과의 관계는 아니다. 사랑은 한 사람과, 사랑의 한 '대상'과의 관계가 아니라 세계 전체와의 관계를 결정하는 '태도', 곧 '성격의 방향'이다. 어떤 사람이 다른 한 사람만을 사랑하고 나머지 동포에게는 무관심하다면, 그의 사랑은 사랑이 아니라 공서적 애착이거나 확대된 이기주의다. 69
만일 내가 참으로 한 사람을 사랑한다면 나는 모든 사람을 사랑하고 세계를 사랑하고 삶을 사랑하게 된다. 만일 내가 어떤 사람에게 '나는 당신을 사랑한다'고 말할 수 있다면 '나는 당신을 통해 모든 사람을 사랑하고 당신을 통해 세계를 사랑하고 당신을 통해 나 자신도 사랑한다'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 70
어머니는 '좋은 어머니'일 뿐 아니라 행복한 사람이어야 한다. 73
사랑하는 어머니인가 아닌가를 가려내는 시금석은 분리를 견디어낼 수 있는가, 분리된 다음에도 계속 사랑하는가 하는 것이다. 76
우리는 흔히 서로 '사랑하고' 있는 두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는 전혀 사랑을 느끼지 못하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들의 사랑은 사실은 두 사람 사이의 이기주의다. 그들은 서로를 동일시하는 두 사람이고, 그들은 단일한 개인을 둘로 확대함으로써 분리의 문제를 해결한다. 그들은 고독의 극복을 경험하지만, 그들 이외의 다른 사람들과는 분리되어 있으므로 여전히 서로 분리된 채 있고 그들 자신으로부터 소외되어 있다. 80
어떤 사람을 사랑한다는 것은 결코 강렬한 감정만은 아니다. 이것은 결단이고 판단이고 약속이다. 81
이기적인 사람이 다른 사람을 사랑하지 못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는 또한 자기 자신을 사랑하지도 못한다. 86
근대 자본주의는 원활하게 집단적으로 협력하는 사람들, 더욱 많이 소비하는 사람들, 그 취미가 표준화되고 쉽게 영향받고 예측할 수 있는 사람들을 필요로 한다. 근대 자본주의는 권위나 원리, 또는 양심에 종속되지 않고 자유롭고 독립되어 있다고 느끼는 사람들, 그러면서도 즐거이 명령에 따르고 그들에게 기대되는 일을 하고 마찰 없이 사회 기구에 순응하는 사람들, 폭력 없이 관리되고 지도자 없이 인도 되고 목적 없이 - 좋은 것을 만들어내고 게속 움직이고 기능을 다하고 곧바로 나아간다는 목적 이외에는 - 움직일 수 있는 사람들을 필요로 한다.
그 결과는 어떠한가? 현대인은 자기 자신, 동료, 그리고 자연으로부터 소외된다. 그는 상품으로 변하고, 현재의 시장 조건 아래에서 최대의 이익을 가져올 수 있는 투자로써 자신의 생명력을 경험한다. 인간 관계는 근본적으로 소외된 자동 기계 같은 관계가 되고, 각자는 군중과 함께 있으므로써 자신의 안전을 도모하고, 따라서 사상이나 감동이나 행동에서 각자의 차이가 없다. - 120
현대인은 사실상 헉슬리(Huxley)가 《멋진 신세계》에서 그려놓은 상(像)에 가깝다. 곧 잘 먹고 잘 입고 성적으로도 만족하지만 자아가 없고 가장 피상적인 접촉을 제외하고는 동료들과 어떠한 접촉도 없는, 헉슬리가 다음과 같은 말로 간결하게 표현한 슬로건에 의해 지도되고 있다. "개인이 감정을 가질 때, 공동체는 비틀거린다." 또는 "오늘 즐길 수 있는 일을 내일로 연기하지 말라." 또는 절정에 달한 선언이지만 "오늘날은 모든 사람이 행복하다."
오늘날 인간의 행복은 '즐기는 데' 있다. 즐긴다는 것은 '만족스러운 소비'를 말하고 상품, 구경거리, 음식, 술, 담배, 사람들, 강의, 책, 영화 등을 '입수하는 것'을 말한다. 모든 것이 소비되고 모든 것을 삼켜버리는 것이다. 세계는 우리의 식욕에 대한 하나의 커다란 대상으로서 커다란 사과, 커다란 병, 커다란 유방이 된다. 우리는 젖을 빠는 자이고, 영원히 기대하는 자이고, 희망에 가득찬 자이다. - 그리고 영원히 실망하는 자이다. 우리의 성격은 교환하고 받아들이고 싸게 팔아버리고 소비하는 데 적합하다. 모든 것은, 물질적 대상과 마찬가지로 정신적 대상도, 교환과 소비의 대상이 된다.
사랑에 관한 한 상황은, 당연한 일이지만, 현대인의 이러한 사회적 성격과 대응된다. 자동 기계는 사랑할 수 없다. 자동 기계는 '퍼스낼리티라는 상품'을 교환할 수 있고 공정한 거래를 희망할 수 있을 뿐이다. 121
정상적인 정신의 본질이 자궁에서 나와 세상 속으로 성장하는 것이라면, 심각한 정신적 질환의 본질은 자궁에 이끌려 자궁 속으로 흡입되는 것이고, 따라서 생활로부터 제외되는 것이다. 131
사이비 사랑의 다른 형태는 '감상적 사랑'이라고 부를 수 있다. 사랑은 환상 속에서만 경험될 뿐, 실재하는 다른 사람과 여기서 지금 맺고 있는 관계에서는 경험되지 않는다는 사실에 이러한 사랑의 본질이 있다. 135
현대인은 과거나 미래에 살지 오늘을 살지 못한다. 현대인은 감상적으로 어린시절이나 어머니를 회상하고, 또는 미래에 대해 행복한 계획을 세운다. 다른 사람들의 가공적인 경험에 참여함으로써 과거 또는 미래로 옮겨지든, 이와 같이 추상화되고 소외된 사랑의 형태는 개인의 현실적 고통과 고독과 분리감을 완화해주는 마취제로서 작용된다. 136
우리가 목격하고 있는 것은 (비록 예외는 있더라도) 신에 대한 우상 숭배적 개념으로의 퇴행이며 신에 대한 사랑을 소외된 성격구조에 적합한 관계로 변형시키는 것이다. 신에 대한 우상 숭배적 개념으로의 퇴행은 쉽게 알 수 있다. 사람들은 불안하고 원칙이나 신념이 없으며, 그들에겐 전진한다는 목표 말고는 아무런 목표도 없다. 그러므로 그들은 계속해서 어린아이와 같은 상태에 남이 있으면서 도움이 필요할 때에는 아버지나 어머니가 도우러 오기를 희망한다. 139
현대인은 오히려 세 살 난 어린아이, 곧 아버지가 필요할 때에는 아버지를 찾으며 울지만 그렇지 않을 때에는 놀이를 할 수 있는 한, 전적으로 자기만족을 느끼고 있는 어린아이와 같다.
이러한 점에서는, 다시 말하면 신의 원칙에 따라 생활을 바꾸지 않고 갓난아이처럼 신인동형적 신상(神像)에 의존하고 있다는 점에서 우리는 중세의 종교적 문화보다는 오히려 우상 숭배를 하는 원시 부족에 더 가깝다. 140
자기훈련, 정신 집중, 인내, 최고의 관심
일정한 시간에 일어나는 것, 하루의 일정한 시간을 명상, 독서, 음악 감상, 산책 등에 할당하는 것, 최소한의 시간 이상으로는 탐정 소설이나 영화 같은 도피주의적 활동에 탐닉하지 않는 것, 과식하거나 과음하지 않는 것 등은 분명히 초보적인 규칙이다. 152
정신 집중을 배우는 가장 중요한 단계는 독서를 하거나 라디오를 듣거나 담배를 피우거나 술을 마시지 않고 홀로 있는 것을 배우는 것이다. 사실상 정신을 집중시킬 수 있다는 것은 홀로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이러한 능력은 사랑의 능력의 불가결한 조건이다. 153
내가 자립할 수 없기 때문에 다른 사람에게 집착한다면, 그 또는 그녀는 생명을 구조하는 자일 수는 있지만 그 관계는 사랑의 관계가 아니다. 역설적으로 말하면 홀로 있을 수 있는 능력은 사랑할 수 있는 능력의 조건이 된다. 153
우리가 하는 모든 일, 곧 음악 감상, 독서, 사람들과의 대화, 경치 구경 등에 전념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바로 이순간 하고 있는 일이 유일하게 중요한 일이 되어야 하고 이 일에 몰두해야 한다. 154
정신을 집중시킨다는 것은 전적으로 현재에, 지금 여기에 살고 있다는 것, 따라서 지금 무엇인가 하고 있으면서 다음에 해야 할 일은 생각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말할 것도 없이 정신 집중은 서로 사랑하고 있는 거의 모든 사람들이 실행해야 한다. 그들은 관습적으로 행해지고 있는 여러 가지 방식으로 도피하지 말고 서로 친밀하게 되는 법을 배워야 한다. 156
사랑한다는 것은 아무런 보증 없이 자기 자신을 맡기고 우리의 사랑이 사랑을 받는 사람에게서 사랑을 불러일으키리라는 희망에 완전히 몸을 맡기는 것을 뜻한다. 1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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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st edited on 10/13/2008 02:09 by 여울바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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