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마을이다
그런데 대중문화와 소비 사회의 선봉에서 난리를 치던 십대들이 최근 들어 온순해지기 시작했습니다. 자신들 표현에 따르면 찌질이가 된 것이지요. (중략) 청소년 무기력증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요? 아마도 가장 큰 원인은 그들에게 모델이 없다는 점일 겁니다. 열심히 공부해서 일류대학을 나와도 취직하지 못하는 형과 언니들을 보면서 아이들은 지레 겁을 먹고 있습니다. 점점 자신감을 잃어가면서 이들은 스스로 삶을 개척하기보다 어딘가 기댈 곳을 찾는데 급급합니다. 학교라는 제도에 남아있으면서 부모에게 순종하는 것이 그나마 안전하다는 결론을 내린 아이들이 많아지고 있습니다. 11
영리한 십대들은 '개천에서 용이 나는' 시대가 지나갔다는 것을 어른들보다 일찍 간파한 듯합니다. 제멋대로 나가다가는 빌어먹는 신세가 될지도 모른다는 계산을, 순진한 형과 오빠와 언니들을 보면서 해낸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앞으로 사춘기적 저항의 양상은 좀 변할 것 같습니다. 12
모두가 함께 가야 한다는 암시가 필요했던 시대가 있었지만, 고부가 가치 상품 시대에, 삶의 질을 이야기해야 하는 마당에 그런 암시는 순기능적이기보다는 역기능적이다. 사실상 나는 88 서울 올림픽을 치르고 나면 그런 유의 단어가 서서히 자취를 감추리라 생각했다. 그 자리를 '따로 또 같이' 움직이는 자율성, 그리고 다양성과 공존에 대한 언어들이 메울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현실은 그런 방향으로 가고 있지 않아서 염려스럽다. 28
배가 고픈 시대에는 식욕과 물욕이 삶의 동기가 되고, 관계의 끈이 끊어져 가는 시대에는 성욕이 삶의 동기가 된다. 압축적 경제 성장기를 거친 우리 사회는 지금 '식욕중심적' 기성세대와 '성욕중심적' 신세대가 서로를 무슨 낯선 짐승 대하듯 바라보고 있다. 농경적 시간에서 탈근대적 시간까지를 한세대 안에 여행해야 했던 이들이게 그 엄청난 변화를 다 소화해 내라고 하는 것은 무리한 요구가 틀림없다. 그러나 달리 피해 갈 길은 없지 않은가? 통탄과 호통의 소리는 합리적 해결에 반비례한다. 49
상품이 홍수를 이루는 소비 사회란 바로 '소비가 미덕인 사회'를 말한다. 다품종 소량 생산 체제에서는 잘 써 본 사람이 잘 번다. 좋은 음식을 먹어 본 사람이 일류 호텔의 주방장이 되고, 맴시에 지대한 관심을 가진 아이가 잘나가는 패션 디자이너가 된다. 다양한 문화 활동에 몰입한 경험이 있는 아이가 문화 기획자가 되고 또 유능한 매니저도 된다. 후기 근대를 생산자가 곧 소비자가 되는 '생비자의 시대'라고 말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58
'결핍의 시대'를 살아가는 전략이 있듯이, '과잉의 시대'에 살아남는 전략이 있다. 그 전략은 금지와 금욕이 아니라 체험과 자기 기획의 원리를 바탕으로 한다. 58
많은 것이 무너지고 있는 지금, 우리가 해야 할 일은 현실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것이다. 문제를 직시하고 각자가 자기 현장에서 시대적 전환을 이루어 낼 작은 일을 시작해야 할 것 같다. 지금과 같은 혼란기에 만병통치약을 알아냈다고 하는 사람은 위험하다. 끊어진 의사소통의 끈을 다시 맺는 일, 타인의 말에 귀 기울이는 것, 그것이 시대가 요구하는 '버전 업'의 시작일 것이다. 붕괴하고 있는 강의실에서 생기가 돌게 하려고 안간힘을 쓰는 나는 요즘 몸과 마음이 많이 아프다. 72
이 아이들은 '학교를 이탈하면 죽는다'는 어른들의 강박증이 안타까울 뿐이다. 배움의 기쁨과 더불어 사는 즐거움을 포기해야 한다면, 욕망이 없는 기계 인간이 돼야 한다면 어떻게 이 카오스의 시대를 살아갈 수 있겠느냐고 오히려 반문한다. 이들에게 가장 두려운 것은 '학교화'의 결과로 얻게 될 무기력증이다.79
적극적 학습의 방식을 터득한 이들에게는 학교는 '버티는 곳'이 아니라 '관찰과 적극적 개입'의 공간이 될 것이다. 80
벡은 적어도 기존의 방식으로 하던 일을 멈추고, 새롭게 사유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고 말한다. '성찰성'이라는 이 시대의 핵심어는 바로 이런 맥락에서 나온 것이다. 문제를 풀려고 아등바등할수록 더욱 문제가 심각하게 꼬이는 사회, 사실, 이럴 때는 뭔가 하려는 사람보다 남을 해치지 않고 노는 사람이 더 훌륭한 주민이 된다. 많은 이들이 다시 신화를 읽고 판타지 소설에 탐닉하는 것도 모두 이런 '비약'을 요구하는 전환기적 시대 흐름과 맥을 같이한다. 88
학교·교실이 학생과 교사들의 소통하는 장소가 되려면, '자기 부정'이 아닌, '자기 긍정'의 공간이 되어야 한다. 106
인간의 탄생은 축복만은 아니며, 역사는 진보하지 않는다. 인연이 있다고 해서 꼭 맺어지는 것이 아니며 삶은 끊임없이 변화할 뿐이다. 삶은 항상 무엇인가를 이루기 위해서가 아니라 사는 그 자체로 의미있다.130
"지금"이 중요하고, 살아있는 존재들 간의 "소통"이 중요하며, 태어날 아이들에게 들려줄 이야기가 중요하다는 것을 이제 깨닫는다. "내" 곁에 있는 그대가 소중하고, 우리가 함께 했던 기억, 그리고 그것들을 품고 있는 오래된 건물이 중요하다. "아우라"의 소멸은 곧 소통의 소멸이며. 상상력의 소멸은 곧 인류의 소멸이다. 우리는 이제 더는 집을 허물지 않는다.131
결론적으로 미래의 주거에 대한 이야기는 이제 집과 건축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사람과 관계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되어야 할 것이다. 144
이제 우리 사회는 '토건 국가'에서 '돌봄 사회'로 전향적 선회를 해야 한다. 거대한 거창한 구호의 시대를 지나, '관계의 소중함'과 '작은 것의 아름다움'을 알아갈 때가 온 것이다. 다양한 사람들과 함께 모여서 노는 것이 곧 많은 창의적 활동으로 이어지는 창조적 공유 지대가 있는 사회 만들기. 나는 그 방법론으로 '작은 마을 학교'와 공동 식탁이 있는 다양한 형태의 공동 주거를 제안한다. 근대적 거대주의에 머물고 있는 이들에게는 불가능한 일로 들리겠지만, 작은 마을 학교와 즐거운 대화가 오가는 공동 식탁들을 중심으로 한 생기 있는 마을들이 후기 근대적 사회를 새롭게 재편할 가능성은 아주 높다. 145
내가 헌신할 곳이 있다는 것, 허망한 시대일수록 중요하지요.195
내가 요즘 학생들을 가르칠 때 가장 유의하는 것은 슬그머니 묻어가거나 숨어들어 있는 것을 못하게 하는 것입니다. 또래를 통해 새로운 것에 흥미를 갖게 되고, 자신을 돌아보게 되기도 하고, 그래서 상호 기운을 북돋우게 한다는 겁니다. 사토 마나부 선생도 이 점을 특히 강조했지요. 특히 요즘 십대들은 여러 가지 일을 한꺼번에 하는 '멀티 테스킹 세대'인 데다가 어른의 말은 그 자체로 지루하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더욱 자기 세대의 모습을 많이 보이는 것이 좋습니다. 달리기 경주가 아니고서야 한 줄로 설 필요가 없다는 것이지요. 각자 편한 자리를 찾아 가장 즐겁게 체조를 할 수 있도록 하자는 것입니다. 208
이 팍팍한 경쟁 사회, '시장'의 자유만을 인정하는 신자유주의 시대에 '살아남는 자'는 무엇보다 마음의 고향을 가진 사람일 것입니다. 주변 사람들로부터 사랑을 받고 있다는 확신, 학교의 모토처럼 '스스로 자라면서 서로를 살려 낼 줄 아는' 돌봄적 창의성을 가진 아이들일 겁니다. 220
요즈음 마음이 생기면 행동이 저절로 되는 '계몽의 시대'가 아니라 행동이 생기면 마음이 생기는 '탈계몽의 시대'라는 점을 숙지해 주면 합니다. 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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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st edited on 05/18/2008 18:14 by 여울바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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