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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rue&Mons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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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터팬 죽이기

그 무렵 곁에 있던 첫 번째 애인이 말하기를, 이 세상에 완벽한 절망은 없다고 했다. 그 사람은 절망 뿐만 아니라 희망도 믿지 않았다.

 

첫번째 애인은 또, 남에게 상처를 까발리지 말라고 했다. 남에게 건너간 상처는 술자리에서든 길바닥에서든 농락당할 가능성이 잇으며, 상처가 농락당한다는 것은 상처의 주인이 쓰레기 취급을 받는 것과 다를 바 없다고 했다.

 

이곳은 16인치의 세상. 핸들은 내 앞에 있다. 조정석에는 "뜻이 잇는 곳에 길이 있다." "두드려라, 그러면 열릴 것이다." 같은 글귀도 적혀 있다. 나느 커브를 돌리기도 하고 속력을 높여 질주하기도 한다. 그러나 29인치로 확장해서 보자. 버튼이 보인다. 버튼을 누르는 손놀림을 주목하자. 바로 조정자다. 16인치 화면에 갇힌 인물이 조정자의 존재를 알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예민한 감수성으로 이 세계를 주시하는 것. 바로 직감이다.

 

죽음이 삶보다 질이 떨어진다고 생각하지 않아. 불현듯 첫 번째 애인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 그렇지만 몇 년 더 살아보기로 했어. 아직은 영혼에 때가 끼지 않았으니까. 그 말을 했을 때 첫 번째 애인은 스물한 살이었다.

 

상처는 아무 곳에서나 발설할 수 있는 게 아니다.

 

두 번째 애인이 말하길, 사람을 구분하지 못하고 감정을 털어놓는 건 아이들이나 하는 행동이라고 했다. 생각해보면 상처를 함부로 까발리지 말라던 첫 번째 애인의 충고와 일맥상통하는 말이었다.

 

두 번째 애인이 말하길 우리 나이가 되면 꿈만 꾸고 살아갈 수 없다고 했다. 그러나 나는 꿈만 꾸고도 충분히 살아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 다만 꿈에서 깨어난 친구들이 빠져나간 자리를 혼자 견딜 수 있는 사람만이 꿈을 지키는 파수병 역활을 할 수 있을 것이다.

 

두 번째 애인이 말하길 나 같은 분류는 "순수의 가면을 쓴 환자" 라고 했다.

 

우리가 스무 살이었을 때, 첫 번째 애인이 말하길, 하기 싫은 일을 하며 구질구질하게 사는 건 노예를 자처하는 행위라고 했다.

 

두 번째 애인이 말하길, 감정대로 움직이는 건 키즈 월드에서나 가능한 일이라고 했다.

 

하나만 열어놓는 건 숨통이죠. 막히면 바로 죽잖아요.

 

미리 여러 개의 가능성을 열어둬야 한다는 거죠. 확률이 낮은 건 하나씩 닫는 거예요.

 

주고 싶어요. 선물은 주는 사람 마음이잖아.

 

개나 인간이나 좁은 세상에 갇혀 사는 것들은 고독을 안으로만 삼키다가 급기야 내면 세계만 바라보게 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두 번째 애인의 말에 의하면 키즈 월드에 갇혀 사는 어른들은 '순수의 가면을 쓴 환자'라고 했다. 그런 환자들은 쳇바퀴 돌리는 햄스터처럼 제자리에서만 노력한다고 했다. 살다 보면 남의 것을 가져와야 할 때가 있는데, 그러기는커녕 그 환자들은 그런 생각조차 하지 않기 때문에 주변 사람들이 배에 가까운 노력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키즈 월드가 망하는 날에 환자들은 갈 곳이 없어 결국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게 될 것이다.

 

아이야, 약한 영혼은 자멸한다. 보이지 않는 예언자가 내 귀에 대고 속삭였다. 닥쳐. 나는 인상을 찡그렸다. 영혼이여, 깨어나라. 이십 대 후반의 육체를 뚫고, 닭 청년들이 가득한 도서관을 벗어나, 저 우주로 날아가라. 부디, 어둠의 미로를 헤치고 공주와 광대가 존재했던 시절을 되찾아다오. 아, 내가 미쳐가고 있는 게 아닐까. 또 피식, 웃음이 나왔다.

 

사람들은 저마다 풀린 나사를 하나씩 가지고 태어난다. 그 나사를 웃으면서 조이는 사람은 낙관론자이고 얼굴을 찡그리며 조이는 사람은 비관론자이다. 그런데 너는 그 나사를 바라보기만 하는 냉소주의자다. 나는 첫 번째 애인에게 처음으로 충고라는 것을 했다.

 

두 번째 애인은 끝까지 내 스무 살의 만남을 이해하지 못했다. 진실을 발설하는 자는 어떤 대가를 치러야 한다. 상대방을 불편하게 만드는 진실이라면 차라리 폐기처분 하는 편이 낫다.

 

내 표정이나 사소한 행동에 반응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마치 세상이 나를 중심으로 돌아가는 것처럼 환상적인 일이었다.

 

첫 번째 애인이 말하길, 어린 사람이 어린 행동을 할 때는 어린 마음으로 갚아주는 게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했다. 어린 마음으로 갚아주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 유형이 있지만 승태처럼 관심을 얻기 위해 발악해대는 어린 사람에겐 무관심으로 갚아주는 게 최선이라고 했다.

 

사소한 변화에 어쩔 수 없이 적응해야하는 것이 인간이었다. 한편 이 세상 어딘가에 인간을 위해 변하지 않는 그 무엇이 존재하고 있을 것만 같았다. 스무 살의 나는 막연하게나마 그것이 진실이란 생각을 했다.

 그러나 스물일곱 살의 나는 이 세상이 진실해지기를 바라지 않는다. 그런 바람을 갖는다는 것 자체가 세상이 진실하지 않다는 것을 증명하니까.

 

 혼자 자취방에 누워 있으면 어떤 생각이 드는 줄 알아? 외로움이 발바닥에 자리 잡는 거야. 외로움은 점차 위로 올라와. 외로움이 목구멍까지 차오르면 기침이 나오고 눈까지 올라오면 눈물이 나오지. 머리끝까지 치고 올라오면 죽는 거야. 외로움이 수류탄으로 변해서 내 몸을 폭파하니까. 아무래도 나는 외롬족인 것 같아.

 

기억은 사람이 무방비 상태로 놓여 있는 틈을 타서 서서히 뇌와 가슴을 점령한다. 시스템대로 움직이는 사람들은 기억에게 덜미를 잡힐 확률이 낮다. 시스템에서 떨어져 나온 스물일곱 살의 나는 기억에게 덜미를 잡혀서 몇 번인가 잔기침을 해야 했다. 자칫 눈물도 흐를 뻔했다. 그러나 울지는 않았다. 눈물이 제멋대로 흘러나올 기미가 보이면 눈을 다시 한번 질끈 감고 잔기침을 해댔다. 이 세상에서 인간만이 자기 종족을 외롭게 만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른 동물들은 자연의 법칙대로 살아가지만 인간은 자연의 법칙보다 더 강력한 인간의 법칙을 만들면서 그 속도에 따라오지 못하는 종족은 과감하게 외면해 버린다.

 

망상에 시달리느니 차라리 꿈을 꾸고 싶다. 사실 나는 망상과 현실의 경계 지점조차 모르고 있다.

 

'혼자 남아본 적 있어? 혼자가 된 사람은 아는 사람이 없는 곳에서 살고 싶다느니 그런 말은 절대로 안해. 오래 혼자 있다 보면 자신이 사람이라는 사실도 잊어버려. 외로움은 수류탄에 맞먹는 파괴력을 가졌어. 무기 없이 사람을 죽이는 방법은 간단해. 독방에 가둬 놓는 거야.

 

혼자 다니는 사람과 혼자 남겨진 사람의 차이점에 대해 말하고 싶었다. 더 자세히 들어가면, 의지로 혼자 다니는 사람과 의지와 상관없이 혼자 남겨진 사람에 대해 얘기하고 싶었다. 전자가 스스로 외로움을 선택한 반면, 후자는 외로움을 강요당했다. 후에 외로움이 수류탄으로 변해 이 두 부류가 자폭하게 될 때, 전자는 자신의 죽음을 자살이라 하고 후자는 타살이라 한다.

 

어쩌면 타인에게 미련은 두지 않으면서 적당한 선에서 정을 표현하는 방법이야 말로 이 시대의 진정한 커뮤니케이션인지도 모른다.

 

이 세상은 공평하다. 약한 자는 퇴장하고 강한 자만 리그에 남는다. 진실과 거짓은 맞바꿔도 살아가는 데 별 지장이 없지만 꿈과 현실을 혼동했다가는 시스템에서 제거당하고 만다. 시스템에서 제거당하는 것은 두렵지 않다. 그러나 혼자 남겨지는 것은 공포다.

 

작가의 말

 

소설은 세계관을 보여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 세계를 특별하게 바라보는 방법. 생각하는 힘. 중심을 지니키는 마음. 과연 내가 잘해 낼 수 있을까? 잊혀지는 것을 두려워하거나 소외되는 것을 겁내지 않으리라 다짐해 본다. 어렸을 적에 예수와 유다를 동시에 사랑하려고 했다. 그러나 그보다 더 어려운 거은 '나'를 사랑하는 일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끊임없이 나를 부정하고 인정하는 작업을 수행하면서 맹렬하게 성장하고 싶다.

 

 나는 어둠을 두려워하던 아이였다. 어둠 속에서 사람이 아닌 것들이 나를 노려보고 있는 것만 같았다. 그러나 그런 것들은 나를 공격하지 않았다.

 "이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건 바로 인간이란다."

 인간이 인간을 공격한다는 사실을 체험으로 알기 전 나는 묘한 메세지를 받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인간을 믿었다.

 "인간은 믿으라고 있는 게 아냐. 사랑하라고 있는 거지.'

 키가 자라면서 메세지를 받는 횟수는 늘었다. 어쩌면 인간은 인간을 진정으로 이해할 수 없기에 오해하는 방법을 택하는지도 모르겠다.

 

 그리운 사람들이 있다. 고마운 사람들 그리고 나를 스쳐간 사람들. 나는 그들을 어떻게 포용해야 할까? 이 순간 많이 부끄럽다. 누군가 내 등을 툭 치고 지나가며 힘내!, 라는 말 한 마디를 건네주었으면 하고 생각해본다. 그러나 그런 바람 역시 욕심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이젠 혼자 걸어 나가야 한다. 나는 늘 혼자 걷고 있었다. 나뿐만 아니라 두 발로 직립보행을 하는 내 동족들은 모두 혼자 걸어간다. 나는 그들의 발걸음을 기억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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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st edited on 11/02/2007 03:18 by 여울바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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