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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든박골 가는 길

눈 온 날 경치

 

온 산천이 눈으로 덮인

주덕 치과로 가는 길

어린애처럼 놀라면서

가까운 들판이며 먼 산들을 바라보다가

"겨울에는 아무래도 이렇게 눈이 와야 돼."

했더니

운전하던 정우가

어제 텔레비젼에서 본 거라면서

하는 이야기가 이랬다.

  "어미토끼가 마을에 내려와 어느 집에 들어가 먹을 것

을 찾다가 그만 올가미에 걸려 죽었어요. 눈이 무릎까지

쌓여 녹지 않은 지가 벌써 보름도 넘었잖아요. 그러니 산

속 눈구덩이에서 뭘 먹겠어요. 그걸 마을 사람들은 알고

토끼 잡으로 산에까지 올라갈 것 없이 집 안에 앉아 잡는

거지요. 더구나 그 어미토끼는 젖먹이 새끼를 여섯마리나

데리고 내려왔거든요. 아무것도 먹지 못하니 젖인들 어찌

나오겠어요. 그래 새끼들도 데리고 나온 거지요. 새끼들

은 발버둥치다가 죽은 어미 젖을 물고 그대로 죽었어요"

 아, 그렇지 그렇지. 이 눈부시게 환한 아름다운 자연 속

에 그런 끔찍하게 참혹한 일이 있는 거지! 그런 지옥을 저

눈이 덮어 가린 거지! 그걸 또 잊어버리고 있었구나!

  하느님,

  당신은 이 땅에 토끼며 노루며 너구리며 맷돼지들,

  그 밖에 온갖 착한 짐승들을 산속에 들어가 살도록 하셨

습니다.

  그런데 어째서 이 몹쓸 사람을 만들어내어 이 땅을

  무서운 지옥으로 떨어지도록 하셨습니까?

  하느님, 제발 좀 대답을 해 주십시오.

  시원한 대답이 아니래도 좋으니

  제발 그 어려운 말만 하지 마시고

  쉬운 말씀으로 우리 온 백성들,

  아니 저 불쌍한 토끼들, 참새들, 땅속에 들어가 있는

  개구리들도 잘 알 수 있는 쉬운 말로 해 주십시오.

  그러나 하느님은 웬일인지 말씀이 없습니다.

  어찌할까요?

  하느님 대신에 제가 말해 볼 수 있을까요?

  그래 생각하다 생각하다 이런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하느님, 이제 깨달았습니다. 이런 것을 깨닫도록 하기

위해 당신은 대답을 아니 하신 거로구나 하는 사실도 깨달

았어요

  하느님,

  당신은 그 토끼들이 마을에 내려가 죽던 날,

  밤이 오기 전 틀림없이 모든 토끼들에게 이런 말을 하셨

지요.

  "토끼들아, 착한 토끼들아, 얼마나 배가 고프냐? 나는

이 춥고 어두운 땅에 너희들이 먹을 것을 찾지 못하게 하

려고 눈을 내린 것이 아니란다. 거칠고 사납고 인정 없는

사람들의 마음을 희고 깨끗하게 씻어 주려고 한 것이란다.

이제 사람들은 저 눈을 보고 그 마음을 흰 눈처럼 깨끗이

씻었을 것이다. 내려가거라. 그들이 잠자고 있는 마을로

가거라. 거기 가면 집마다 버려 놓은 밥찌꺼기가 부억 앞

에 있을 것이고, 뒷담벽에는 씨래기도 있을 것이다. 사람

들은 이제 착해져서 내일 아침 일어나 밥찌꺼기나 씨레기

가 없어져도 너희들을 원망하지 않을 것이고, 도리어 '우

리가 배고픈 짐승들을 살렸다'고 기뻐할 것이다."

  하느님,

  이렇게 말씀하신 것이 맞지요? 저는 믿습니다.

  그런데 참, 그 뒤 어떻게 됐습니까?

  하느님도 똑똑히 보셨지요? 그 어미토끼가 올가미에 걸

려 발버둥칠 때 하느님은 얼마나 놀라고 괴로웠했습니까?

  하느님도 그 어미토끼와 함께 몸부림치셨겠지요.

  아기토끼들을 눈앞에 두고 그것을 생각하며 몸부림치다

  몸부림을 치다가 피를 토하며 죽어갔겠지요.

  이제 이 몹쓸 사람들은

  토끼고 사슴이고 너구리고 개구리고 뱀이고,

  곰이고 맷돼지고 소고 뭐고 다 답아먹고

  강물 바닷물의 고기도 다 잡아먹고

  땅속에 숨어 있는 짐승들 다 잡아먹고,

  하느님, 당신까지 잡아먹고 나면

  사람만 남게 되겠지요.

  그때는 뭘 먹을까요?

  사람끼리 서로 잡아먹는 판이 벌어지겠지요.

  벌써 그 판이 한쪽에서 벌어지고 있어요.

  오, 하느님, 이것은 상상이 아닙니다.

  이것은 엄연한 현실입니다.

  이것은 바로 눈 앞에, 어제도 오늘도 벌어지고 있는

  지옥의 현장입니다.

  다만 그 불쌍한 토끼들이,

  죄없는 수많은 짐승들이

  죽어서 지금쯤 하늘나라에 가서

  따스한 어느 자리에 앉아 맛있는 것을 마음껏

  먹으면서 바깥 하늘에 날리는 눈송이라도 바라보고

  기뻐하고 있는지, 그것은 알 수 없습니다.

  저는 그렇게 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만 그런 것 어찌

  다 알 수 있겠습니까. 오직 지금 이 땅에는

  죽었습니다. 자연도 생명도 죽고 하느님 당신도 죽고

  다만 살아 있는 것은 무지함입니다.

  탐욕입니다. 속임수입니다. 왕따입니다.

  왕따, 그리고 서로 잡아먹기 입니다.

  서로 잡아먹기를 가르치는 학교에

  어른들은 자식들을 보내면서 온통 그 자식들이

  남을 잘 잡아먹도록 날마다 채찍질하기에

  미쳐 버렸습니다. 아주아주 돌아버렸어요.

  오, 하느님, 이 땅위의 이 괴물을

  어찌하시렵니까?

  하루바삐 이 괴물을 싹 쓸어다

  그 어느 딴 세상으로 보내 주십시오

  그렇게 하지 않고 어찌하겠습니까?

  그 밖에 다른 길을 저는 생각을 할 수가 없습니다.

  하느님, 그래서 이 땅에 다시

  산마다 꽃이 피게 하시고

  새가 울고 토끼와 노루가 마음놓고 뛰어다니게

  해 주십시오. 개구리가 울고 뜸부기 소리가 나는

  들판이 되게 해 주십시오. 빨간 저녁노을을

  쳐다볼 수 있게 해 주십시오.

 

 

고든박골 가는 길 1

 

고든박골 가는 길

양지바른 넓은 땅 좋은 밭자리는

모조리 담배밭이다.

그 다음 또 좋은 자리는 고추밭, 옥수수밭이다.

지금 이 가물에도 담배와 고추와 옥수수는

싱싱 푸르게 자라나고 있다.

그런데 옥수수도 사람 먹으라고 심은 게 아니다.

축산 농가에서 정부보조금 받아 내려고 심었다던데

우리 속에 갇혀 있는 소들도 그 옥수수는 먹지 못한다.

가을에는 옥수수가 보기 좋게 익지만

밭 주인은 옥수수를 거두지 않고 대궁이도 베지 않고

그대로 버려두어 겨울까지

비에 젖고 눈에 젖고 그러다가 썩어

더러는 까치와 비둘기들 그 밖에

온갖 새들 짐승들의 먹이가 되는 것은

차라리 다행이라 하겠지만

그 옥수수가 아까워 마을 사람들 지나가다가

몇 송이 꺽어 가려고 하면

왜 남이 농사지은 걸 가져가나 하고

밭 주인은 큰소리로 권리를 주장한다.

내버려 두어 썩어 거름이 되더라도

남에게 주지는 않겠다는 이 심사는

어디서 배운 것일까?

학교에서 읽은 교과서로 배운 것일까?

점수따기 시험공부에서 익힌 것일까?

텔레비젼에서, 아니면 국회의원

지방의회 의원 선거에서 깨달은 것일까?

 

고든박골 가는 길 느티나무 고개를 넘어서면

율무우 율무우 소들이 울어 대는 소리

컹컹 깽깽 개들이 짖는 소리

소를 기르는 축사들 늘어선

그 옆에는 수십 마리 개들이 갇혀 있어

쇠똥 냄새 개똥 냄새 천지가 되고

젖 달라 울어 대는 송아지 소리

송아지를 부르는 어미소 소리

사람만 보면 짖어 되는 개들의 비참한 소리

천지를 진동하고,

 

축사 앞길에는 소젖을 거두어 가는

어느 회사의 트럭이 서 있다.

'우리 회사의 사료를 안 사주면

소젖을 안 사 가겠다"고 하여

올 때마다 사료를 갖다 놓는다는 트럭이 고마워

축사 주인은 품 들이고 돈 들여 옥수수를 거두는

수지 안 맞는 짓은 하지 않는다고 들었다.

 

고든박골 가는 길에

좋은 밭자리는 모조리 담배밭 옥수수밭 고추밭

이 모진 가물에도 웬일로 담배와 옥수수와 고추만은

푸르고 싱싱하여

이 세상에 다시없는 평화로운 농촌을

이 세상에 다시없는 넉넉한 농촌을

그림으로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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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st edited on 01/06/2008 23:20 by 여울바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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